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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장례식을 집례하면서....'(2009.8.16) - 용문교회 - 목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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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일기

“두 번의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하루 간격을 두고 두 분의 장례식을 집례했다.

 

 장례식 때 나는 고인의 삶을 회고하면서 설교 본문을 택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에 본문을 찾기가 어려워 그냥 성경이 말하는 ‘죽음’에 대한 ‘하늘나라’에 대한 보편적인 본문을 찾아 설교한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정말 이야기할 것이 많은 아름다운 삶, 본이 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신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는, 그가 죽은 다음에 평가되는 것 같다.

 적어도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겉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잘 알고 있다. 향기가 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갔는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다 갔는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고인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옛날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자리가 장례식 자리다.

 그래서 나는 장례식을 집례 할 때마다, 훗날 내가 죽었을 때 나의 장례식을 집례할 목사님은 어떤 본문을 택하여 어떤 설교를 하실까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다짐을 하곤 한다.

 

 평범한 사실, 사람이 태어나면 한 번 예배드리지만, 죽으면 적어도 세 번, 많게는 다섯 번 여섯 번 예배를 드린다. 그만큼 죽음이 갖는 의미가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장례식 예배는 죽은 자를 위한 예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예배다. 장례식 예배가 죽은 고인에게는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잘 살아야 한다. 살아 있을 때 더 많이 예배 드려야 하고, 살아 있을 때 더 많이 기도해야 하고, 살아 있을 때 더 많이 찬송해야 한다. 죽으면 끝이다. 죽은 후 집례 되는 장례식 때 부르는 찬송, 기도, 말씀은 죽은 자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 보다 더 잘 살자.

 그래서 내가 죽어 장례식이 진행될 때, 장례식에 참석한 살아 있는 사람들이 고인의 삶을 회고하며 전하는 설교 말씀을 듣고 큰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고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살아 있을 때, 지금 하루하루를 보다 더 바르게 보다 더 신실하게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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