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과 식사”
“치열하게, 그러나 여유롭게!“
치열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치열함 때문에 쫓기는 삶은 싫다. ‘치열하게, 그러나 여유롭게!’ 요즘 내가 붙잡고 있는 두 단어다.
식당과 식사, ‘치열함과 여유’ 두 가지를 붙잡아야 한다.
식당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치열하게 준비하건만, 철없는 아이처럼 투정하며 식사한다.
가까이에 얼마나 많은 식당이 있는가? 그런데도 식사할만한 곳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치열하다. 아니 살벌하기까지 하다.
오직 손님만 생각하며 식당을 열었다. 주인의 마음을 먹는다며 즐겁게 식사한다.
우리 식당 조리 과정을 다 보여주었다. 이제는 안 봐도 다 안 다며 믿고 먹는다.
식당 해서 큰 돈 벌겠다는 욕심을 비웠다. 큰 지갑들을 열고 와서 식사한다.
준비시간이 길어진다. 한 그릇 뚝딱, ‘여기 한 그릇 추가요!’ 식사 때마다 합창한다.
식당 문화를 팔았다. 식사 문화를 즐긴다.
우리 집 식당만의 비밀 창고가 있다. 소문 듣고 와서 먹는단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긴다.
목회, ‘치열함과 여유’ 두 가지를 붙잡아야 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치열하게 말씀 꼴 준비하건만, 철없는 아이처럼 투정하며 예배하는 교인이 있다. 그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갈만한 교회 찾기가 어렵다는 말들이 들린다. 치열하다. 살벌하다.
이런 목회를 꿈꾸며 마음을 다잡는다.
오직 양들만 생각하며 목회 한다. 목사의 마음 헤아려 즐겁게 교회 온다.
목사의 일상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이제는 안 봐도 다 안 다며 믿고 따른다.
목사 개인의 행복을 위한 욕심을 비웠다. 지갑들을 열어 헌금한다.
설교 준비하는 시간을 자꾸 늘여간다. “아멘, 할렐루야!” 예배 때마다 추임새가 춤을 춘다.
‘아트목회 문화‘를 추구한다. 신선한 기독교 문화에 교인들 눈이 반짝인다. 이런 모습 기대하며 여유도 갖자.
“치열하게, 그러나 여유롭게!“ 두 단어를 붙잡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목회한다.

Facebook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