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묻혀 있어도 사명으로 사는 삶은 복되다.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生이 있다“ 이정록 시인의 ‘슬픔’이라는 제목의 시다.
무거운 꽃을 피우다가 열매도 맺기 전에 지는 인생의 슬픔을 노래한 것 같다.
꽃으로 피지도 못하고 묻혀 사는 더 슬픈 生이 있다. 발바닥이다. 발바닥은 밑바닥에 묻혀 일하는 막노동자다. 주인님 휘청거릴 때 붙잡아드리느라 만성 디스크가 생겼다. 작은 가시 정도는 쉽게 부러뜨릴 정도로 단단하지만, 작은 가시가 우습게보고 뚫고 들어올 정도로 약하다. 못 생겼다고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고, 잘 생겼어도 눈길 한 번 주는 사람 없다. 고독하다. 너무 고독하고 힘들어 돌부리에 머리를 박아 “아야!” 하며 비명을 지른다. 주인님 사랑 받고 싶어 무좀으로 피 뿌려 유혹 한다. 따뜻한 햇볕 받아 이름 없는 들꽃으로라도 피는 것이 소원인데, 햇볕 좋은 날은 두꺼운 신발, 두꺼운 양말에 겹겹이 갇혀 산을 오른다. 꽃으로 피지도 못하고 묻혀 사는 슬프디 슬픈 生이 발바닥이다.
슬프디 슬픈 生 발바닥의 저녁은 거룩하다. 발바닥은 저녁마다 거룩한 감사 의식을 갖는다. 저녁의 발 씻는 시간은 주인님 사랑받는 시간이다. 신발 양말 다 벗고, 향긋한 비누로 씻어내고...... “주인님 부드러운 손길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발가락 인사 예쁘게 드리고, 따뜻한 이불속에 묻혀 잠을 청한다.
꽃으로 피지도 못하고 묻혀 사는 슬프디 슬픈 生이 발바닥이다.
묻혀 있어도 사명으로 사는 복된 生이기에, 오늘도 감사기도 드리며 이불 속에 또 묻힌다.

Facebook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