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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떨림, 살림'(2014.12.14) - 용문교회 - 목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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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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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떨림, 살림'(2014.12.14)

“울림, 떨림, 살림”

 

 

 예배는 소통이다. 하나님과 회중과의 소통, 예배집례자와 회중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때 예배가 예배가 된다.

 소통에 필수적인 것이 신호체계다. 송수신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을 때 소통이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 예배의 송수신 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수신자들은 최첨단 세계를 걷고 있는데, 송신자들은 70년대 송신 체계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 예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 특히 최첨단 수신체계를 갖고 사는 청년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교회의 예배에서 '울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울림'이 일어나지 않으니 '떨림'은 거의 없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니 가슴 벅찬 '떨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예배의 시작은 '울림'이고, 예배의 중간은 '떨림'이다. 그리고 예배의 마무리는 '살림'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울림’으로 다가오고, 그 울림이 가슴의 ‘떨림’으로 이어져야 한다.그리고 그 떨림은 세상을 살리는 '살림'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그럴 때 예배가 예배가 된다.

 지난주일, 임직식이 있었다.

 나름대로의 송수신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울림'이 있는 임직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과연 그 속에서 '떨림'을 경험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임직자 당사자들에게는 '떨림'이 있었을까? 눈물이 없는 임직식이 일반화되었기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임직식은, 예배는 결코 '떨림'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살림'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과연 그런 임직식이었는가?

 

 '울림'이 있는 예배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떨림'이 일어나는 예배를 위해 3시간 기도하고, '살림'으로까지 나아가는 예배가 되기 위해 내가 죽는 십자가 목양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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