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여유”
지난 4월 21일 주간 한 주간을 ‘중국교회 지도자 교육’ 강의를 하고 돌아왔다.
이 일을 시작한지가 벌써 7년쯤 된다. 그리고, 이번에 다녀온 중국 ‘온주’만 해도 세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 ‘서주’라는 곳을 갔을 때, ‘아하! 중국 선교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해야 한다.’ 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고,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 때 처음 만난 학생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우리 용문교회 식구들 같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여러 해가 흘렀다. 이번에 ‘온주’는 세 번째 방문이요, 이번에 ‘노인교육’을 강의했는데, 그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은 두 번째 만나는 학생들이다. 아니, 이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교회에 들러 만났으니, 사실 세 번째 만남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가깝게 느껴졌다. 내 입에서 이름이 곧바로 불러지는 학생도 몇 있었고, 그 학생의 가정 형편까지 기억나기도 했다. 벌써 정이 많이 든 것을 느꼈고, 강의도, 중국에서의 한 주간의 체류도 뭔가 모를 ‘여유’가 생겼다.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우리 교회, 용문교회에서의 사역도 그렇다.
어제, 어느 집사님 가정 이사 심방을 하고 그 집에서 마련한 저녁식사를 하는데, 깊은 정이 느껴졌다. 그냥 좋았다. 그냥 편하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집 식구들이 그냥 좋고, 함께 있고 싶고, 편하고... 그런 것처럼 식구 같은 느낌이었다. 16년의 세월을 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어떤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잘 익은 김치’같은 맛도 느껴진다. “아! 이 맛이야.” 어느 광고 카피처럼 목회의 맛을 많이 느끼며 음미하며 사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다짐을 한다.
“그러나 처음 만났을 때의 긴장을 잃지 말자.” “처음 담임목회를 시작했을 때의 긴장을 늦추지 말자.”
자칫하면 ‘여유’가 ‘불성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유’가 ‘준비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유’가 ‘기도 약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목회가 끝나는 그 날까지, 아니 내 생명이 끝나는 그 날까지, 변함없는 ‘긴장’과, 한 식구처럼 느껴지는 ‘여유’와 ‘정’이 균형을 이룬 목회를 하고 싶고, 또 그렇게 다짐한다. 이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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