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성령”
인근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께서 가끔 자작시를 보내 주신다.
이번에는 ‘김장 성령’ 이런 제목의 시를 보내셨다.
김장 성령
제각각 밭에 심겨졌던 배추들이 모였다
배추가 흉년이라고
고갱이가 차지 않아서
고민들을 하는데
하나같이 노란 고갱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좋은 것들이 모였다
배추를 갈라서 소금물에 담갔다가
소금을 뿌려가며
차곡차곡 쌓아간다
아무리 기가 살아있어도
굵은 소금 앞에 누가 당하랴
내 죽지 않은 성질도 같이 묻어 넣는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누군가 와서 절이는 배추자리를 바꾸어 놓는다
이 추운날 밤에 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첫눈이 왔다
절인 배추를 덮어놓은 함지박 눈을 쓸어내리다가
그 위에 얼어버린 고무장갑이 놓여있다
그것을 가져다가 녹이고 말려서 갖다 놓았다
아침에 할머니 성도님들이 모였다
한손엔 고무장갑
한손엔 칼
무채를 썰고
양념을 넣고 속을 버무리는데 땀방울이 흐른다
이 혼합의 예술을 누가 만들었는지
빨간 속을 배추에 싸서 한 입 가득 넣는다
지나온 가을의 냄새
다가올 겨울의 냄새가 섞여있다
하나 되기 힘든 성도들이 하나로 뭉쳤다
무 배추 파 마늘 생강 갓 소금 고춧가루
액젓 새우젓처럼
김장은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중간에 나오는
‘아무리 기가 살아있어도
굵은 소금 앞에 누가 당하랴
내 죽지 않은 성질도 같이 묻어 넣는다’
이 구절이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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