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글이 이메일을 통해 가끔씩 들어온다.
얼마 전에 보았던 ‘나의 어머니’라는 글을 소개한다.
내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어머니께서는 전남 광주 누님 집에 계셨다. 누님 집에 있는 동안에 어머니께서는 추운 겨울 날씨에 마루 바닥에 담요 한 장을 까신 채로 주무시곤 하였다. 누님 부부가 질겁을 하여 "어머니 따슨 방 놔두고 왜 차가운 마루 바닥에 주무시려 하나요?" 하고 물으니, 어머니께서는 "아들 진홍이가 감옥 찬 마루 위에 자고 있는데 이 어미가 따슨 방에 편히 자면 되겠느냐? 진홍이는 어릴 때부터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인데 이 어미가 응원을 해야제"하시며 밤마다 마루 바닥에 누우셨다.
누님이 "어머니 마루 바닥이 차서 잠이 오나요?"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잠이 안 와야 기도하제"하시며 하루 밤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하셨다. 나는 옥중에서 그 소식을 듣고는 어머니께 글을 보내어 사정하였다.
"어머니 제발 그러지 마시고 따뜻한 방에 주무셔요. 어머니가 그렇게 찬 마루 바닥에 주무신다는 소식을 들은즉 제가 염려스러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어머니 그러시다 큰 병 나시게 되면, 저는 불효자식 되게 됩니다."
나의 간절한 편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고집을 꺽진 못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감옥에서 풀려 나오기까지 두 해 겨울을 그렇게 찬 마루 바닥에서 주무시기를 계속하셨다.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이미 4년이 지났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나 같이 약점 많고 실속 없는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어머니의 그런 정성과 기도가 밑거름이 되어 가능한 일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나의 어머니도 ‘기도의 어머니’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목사님 새벽 일찍 일어나 새벽종 치는 것 힘 드시다고, 어머니는 새벽종까지 치시는 교회의 종지기셨다.
장로회신학대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하늘 나라가셨으니, 이제 어머니 돌아가신 지 30년 주년이 된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이 ‘이제는 누가 나를 위해, 신학공부하고 목회할 나를 위해 누가 기도해 줄까?’ 이것이었는데, 어버이날,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면서 평생을 새벽기도 하신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이셨던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Facebook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