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교 성실중학교”
후배 목사 부인이 수술을 해서 병문안을 다녀왔다.
후배 목사는 나의 모 교회, 충남노회 연봉교회의 담임목사님 아들이다.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후배이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에 다닐 때까지, 그의 아버지 목사님 목회하시는 나의 모 교회, 연봉교회에서 함께 형제처럼 자랐다. 지금도 물론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후배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을 마친 후 독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는 15년 만에 신약학을 전공한 신학박사가 되어 귀국하였고, 지금은 천안에 있는 교회의 부목사로 있으면서 여러 신학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고 있다.
후배 목사는 모교인 성실중학교 교장선생님 딸과 결혼을 했다.
양쪽 다 목사님이신 아버님들이 서로 사돈을 맺자 하면서 이야기가 오고간 끝에 결혼에 이른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중학교 교장선생님이시면서 목사님이신 분이 장인어른인 것이다.
내가 다녔던 그 성실중학교는 사립학교로서, 그 당시에 중학교가 평준화 되면서 그 지역의 명문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서울에서, 대전에서 오셨다. 물론 교장선생님이 주선하여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때 교장선생님의 친인척들도 교사로 오셨다. 그 중의 한 분이 ‘이종률선생님’이시다. 수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은퇴하셨고, 교회의 장로님이시다. 그리고 당시 중학교 교장선생님의 처남이시기도 하셨다.
이 ‘이종률선생님’은 중학교 때 공부를 잘 했던 나의 형님의 담임선생님이셨는데, 그 때부터 우리 집안을 많이 사랑해주셨고, 그의 동생 언구가 같은 중학교에 들어와 공부 잘하고 신앙생활 잘 한다고 아주 좋아하셨다. 그런데 그 날 후배 목사 부인 병문안을 가서 이 ‘이종률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얼굴 모습, 목소리가 그대로셨다. 그리고 여전히 꼿꼿하셨고, 당당하셨고, 자신감 넘치셨고, 건강하셨다.
병원 휴게실에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구가 목사님 되어 목회를 잘 하고 있다는 소식 들었다면서,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갑고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랑스러워 하셨다.
돌아오면서 나의 모교, 성실중학교가 생각났다. 대부분 크리스천이셨던 선생님들, 그리고 실력이 뛰어나셨고 정말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하셨던 선생님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도시 학교 못지않은 여러 가지 특별 행사와 프로그램들을 갖추고 있었던 모교로 기억되었다.
그 날 그 장로님이신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다. “성실중학교!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학교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 그리고 좋은 학교.... 이런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서 나를 빚으신 하나님 섭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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